AI 지식증류와 지식재산권 문제

파인특허
June 9, 2025

21세기 기술 패권의 정점에 있는 인공지능(AI) 시장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자본과 시간을 투자한 거대 기술 기업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고성능 AI 모델 시장에, 놀라울 정도로 적은 비용으로 대등한 성능을 구현하는 강력한 도전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AI 기술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업계에 충격과 함께 복잡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효율성의 중심에는 지식증류(Knowledge Distillation)라는 기술이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마치 최고의 지식을 가진 스승(교사 모델)이 제자(학생 모델)에게 핵심 노하우만을 정제하여 전수하듯, 이미 학습된 거대 AI 모델의 ‘지식’을 더 작고 가벼운 모델에게 이전하는 방법론입니다.

그러면 과연 타사의 AI 모델을 ‘스승’으로 삼아 내 AI를 훈련시키는 행위는 정당한 기술적 진보일까요, 아니면 타인의 막대한 투자를 무단으로 편취하는 교묘한 지식재산권 침해일까요?

1. ‘지식증류’란 무엇인가? 

법적 판단에 앞서, 기술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필수입니다. 지식증류는 단순히 AI를 복사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 교사 모델 (Teacher Model): 수십만 개의 고성능 GPU를 수개월간 가동하고, 인터넷 전체에 버금가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시켜 탄생한, 그야말로 ‘현자’와 같은 대규모 AI 모델입니다. (예: OpenAI의 GPT-4, 구글의 Gemini 등) 이 모델을 만드는 데는 수조 원의 비용이 소요됩니다.
  • 학생 모델 (Student Model): 교사 모델보다 훨씬 작은 매개변수(Parameter)를 가진 경량 AI 모델입니다. 목표는 제한된 자원(스마트폰, 자동차, IoT 기기 등)에서도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 지식 이전 (Knowledge Transfer): 이것이 지식증류의 핵심입니다. 학생 모델은 교사 모델로부터 단순히 ‘정답(Hard Label)’만을 배우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 사진은 고양이인가?’라는 질문에 ‘예(100%)’라고 배우는 대신, 교사 모델이 ‘고양이일 확률 95%, 표범일 확률 3%, 개일 확률 1%, 기타 1%’와 같이 판단하는 ‘추론 과정의 확률 분포(Soft Label 또는 Dark Knowledge)’ 자체를 학습합니다. 정답이 아닌 선택지들에 대한 미묘한 관계까지 배우기 때문에 훨씬 풍부하고 정교한 지식을 효율적으로 습득할 수 있습니다.

이 기술 덕분에 스타트업은 수조 원의 투자 없이도 수백만 원 수준의 비용으로 고성능 AI를 개발할 수 있게 되며, 이는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 시대를 여는 결정적인 열쇠가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교사 모델 개발사(OpenAI, Google 등)가 자사 서비스 이용약관을 통해 자사 모델의 결과물을 경쟁 모델 개발에 활용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부터 법적 분쟁의 가능성이 시작합니다.

2. 지식증류와 지식재산권

무단 지식증류 행위가 법적 분쟁으로 비화될 경우, 크게 저작권법부정경쟁방지법의 두 가지 법률이 첨예하게 맞붙게 됩니다. 각 법률의 쟁점을 단계별로 세밀하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쟁점 1: [저작권법] AI 생성물은 '저작물'인가?

  • 핵심 질문: 교사 모델이 생성하는 답변(출력물)을 저작권법상 '저작물'로 보아, 이를 학습에 사용한 학생 모델 개발사를 '저작권 침해'로 문제 삼을 수 있는가?
  • 법적 분석: 우리 저작권법 제2조 제1호는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합니다. 이 ‘인간’이라는 요건이 결정적인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AI가 사용자의 프롬프트(지시)를 기반으로 결과물을 내놓더라도, 그 최종 표현을 완성하는 것은 AI의 자율적인 연산 과정입니다. 미국 저작권청이 AI 생성 이미지 '새벽의 자리야(Zarya of the Dawn)' 사건에서 인간이 창작한 텍스트와 배열은 인정하되 AI가 생성한 개별 이미지는 저작권을 불허한 사례처럼, 현재 법체계는 AI 자체를 저작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 결론: 지식증류 과정에서 생성되는 교사 모델의 출력물은 '인간의 창작물'이 아니므로 저작물성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쟁점 2: [저작권법] 방대한 AI 답변은 '데이터베이스'인가?

  • 핵심 질문: 저작물성이 없다면, 교사 모델이 생성한 방대한 답변의 집합체를 '데이터베이스'로 보아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로 보호받을 수 있는가?
  • 법적 분석: 저작권법상 데이터베이스로 보호받기 위해서는 소재가 ‘체계적으로 배열 또는 구성’되어 개별적으로 접근하거나 검색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식증류 과정에서 활용되는 교사 모델의 답변은 특정 질문에 대해 실시간으로, 매번 새롭게 생성되는 비정형적 데이터의 흐름에 가깝습니다. 이는 사전에 정해진 구조에 따라 체계적으로 축적되고 관리되는 전통적인 데이터베이스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 결론: AI 답변의 집합을 법적 의미의 데이터베이스로 인정받는 것 역시 상당한 어려움이 따릅니다. 따라서 저작권법의 틀 안에서 지식증류 행위를 규제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쟁점 3: [부정경쟁방지법] 데이터 부정사용 행위에 해당하는가? (카목)

  • 핵심 질문: 지식증류가 '데이터'를 부정하게 사용하는 행위에 해당하는가?
  • 법적 분석: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카목은 '전자적 방법으로 상당량 축적·관리되는 기술상 또는 영업상의 정보'인 데이터를 부정하게 취득·사용하는 행위를 규제합니다. 이 조항이 적용되려면 AI의 답변이 '상당량 축적·관리'된 데이터여야 합니다. 쟁점 2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실시간 생성·소멸되는 AI 답변의 특성상 이 요건을 충족한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이 역시 법정에서 치열한 다툼이 예상되는 부분입니다.
  • 결론: 적용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축적·관리' 요건에 대한 해석 문제로 인해 이 조항만으로 지식증류를 막기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

쟁점 4: [부정경쟁방지법] 성과도용 행위에 해당하는가? (파목)

  • 핵심 질문: 지식증류가 타인의 막대한 투자를 무단으로 도용하여 공정한 경쟁 질서를 해치는 '성과도용' 행위인가?
  • 법적 분석: 이 조항이 바로 지식증류 분쟁의 가장 핵심적인 전장이 될 것입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파목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 ①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OpenAI의 GPT-4, 구글의 Gemini 등은 이론의 여지 없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수조 원대의 개발비, 최고급 반도체 수만 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인력 투입 등은 법정에서 충분히 입증 가능한 '상당한 투자'입니다.
    • ② '공정한 상거래 관행에 반하는 방법으로 무단 사용': 법원은 이 부분을 판단할 때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 명시적 금지 약관: 교사 모델 개발사들이 이용약관을 통해 경쟁 모델 개발을 금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됩니다.
      • 무임승차(Free-riding): 학생 모델 개발사는 교사 모델 개발사가 감당한 막대한 R&D 비용과 리스크 없이, 그 결과물인 '지식'이라는 과실만을 손쉽게 취득합니다. 이는 전형적인 무임승차 행위로 비칠 수 있습니다.
      • 경쟁관계 및 시장 대체 가능성: 저비용으로 개발된 학생 모델이 교사 모델의 시장을 잠식하고 경제적 이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 결론: 비록 저작권법으로 보호받기 어렵더라도, 지식증류 행위는 부정경쟁방지법상 '성과도용'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선두 기업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이 조항을 근거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3. 기업을 위한 생존 전략

이 복잡한 법적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어떻게 생존하고 성장해야 할까요? 저희는 기업의 입장에 따라 다음과 같은 맞춤형 전략을 제시합니다.

To. 학생 모델 개발사 (스타트업, 후발주자)

  1.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금물입니다. 저비용·고효율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무단으로 지식증류를 시도하는 것은 시한폭탄을 안고 사업을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적발 시 막대한 손해배상, 서비스 중단 명령, 투자 유치 실패, 그리고 회복 불가능한 평판 손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 라이선스를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하십시오. 기술 개발에 지식증류가 필수적이라면, 반드시 교사 모델 개발사와 정식 라이선스 계약 또는 기술 파트너십을 체결해야 합니다. MS가 OpenAI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그 기술을 활용하는 것처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얻는 기술적 안정성은 장기적으로 가장 확실한 성공의 발판입니다.
  3.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차별화하십시오. 지식증류에만 의존하기보다, 공개된 오픈소스 모델을 기반으로 자사만의 고품질 데이터를 활용해 미세조정(Fine-tuning)하거나, 새로운 모델 아키텍처를 개발하는 등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술 기업의 길입니다.
  4.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증명할 준비를 하십시오. 개발 과정에서 사용한 데이터셋, 학습 방법론, 모델 아키텍처 등을 철저히 문서화하여, 분쟁 발생 시 우리가 타사의 지식재산을 침해하지 않았음을 명확히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To. 교사 모델 개발사 (선두기업)

  1. 법적 방어벽을 견고하게 구축하십시오 (이용약관 강화): 서비스 이용약관에 지식증류를 포함한 경쟁 목적의 모델 활용 금지 조항을 더욱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합니다. '경쟁 모델'의 정의, 금지되는 '사용' 행위의 범위 등을 변호사의 검토를 거쳐 빈틈없이 설계해야 합니다.
  2. 기술적 감시망을 촘촘히 하십시오 (모니터링 및 집행): API 사용 패턴을 정교하게 분석하여 비정상적인 대량 질의, 특정 패턴의 반복적 호출 등 지식증류로 의심되는 행위를 자동으로 탐지하고 차단하는 기술적 조치를 고도화해야 합니다.
  3. '성과'를 입증할 증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십시오: 잠재적인 소송에 대비하여 모델 개발에 투입된 R&D 비용, 인건비, 서버 및 GPU 인프라 비용 등 '상당한 투자'를 입증할 모든 자료를 회계 자료와 연동하여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이는 성과도용 소송의 승패를 가를 핵심 증거가 될 것입니다.

결론

지식증류는 AI 기술의 민주화를 이끌고 산업 전반의 기술을 가속화할 잠재력을 지닌 강력한 도구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칼날은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타인의 막대한 투자와 노력을 정당한 대가 없이 이용하는 것이 용납된다면, 누구도 미래를 위한 어려운 R&D에 투자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 생태계 자체가 붕괴될 것입니다.

결국 해답은 '투명하고 공정한 라이선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있습니다. 선두 기업은 합리적인 가격과 조건으로 자사의 모델을 활용할 수 있는 API와 라이선스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후발주자는 그 룰을 존중하며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기술을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