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전 특허 출원을 놓치면 벌어지는 일

파인특허
November 20, 2025

CES, MWC와 같은 국제 박람회부터 국내의 각종 산업 전시회는 기업의 R&D 성과를 시장에 검증받고 판로를 개척하는 중요한 비즈니스 모멘텀입니다. 그러나 IP 전문가의 관점에서 볼 때, 출원 전 공개가 이루어지는 박람회 현장은 기업의 핵심 자산이 무방비로 노출되는 법적 공백 상태와 다름없습니다.

오늘은 전시회 준비 과정에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특허 출원의 당위성과, 이를 간과했을 때 발생하는 법률적 리스크, 그리고 단계별 대응 전략을 심도 있게 다뤄보고자 합니다.

1. 특허법의 대원칙 신규성과 권리의 소멸

특허 제도는 발명자에게 독점 배타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대신, 그 기술을 대중에게 공개하도록 유도하는 사회적 계약입니다. 여기서 특허 등록의 가장 기초적이며 절대적인 요건은 바로 신규성입니다.

  • 법리적 해석: 특허 출원 시점에 해당 발명이 국내외에서 공지되었거나, 공연히 실시된 경우 신규성을 상실한 것으로 간주하여 특허 등록을 거절합니다.
  • 실무적 위험: 박람회에서의 시제품 시연, 팜플렛 배포, 기술 설명회 등은 모두 공지 행위에 해당합니다.

[Case Study: K사의 뼈아픈 실책]

상황: 스마트 팩토리 솔루션 기업 K사는 코엑스 산업전에서 획기적인 센서 제어 기술을 시연했습니다. 현장 반응은 뜨거웠고, 3개월 후 해당 기술에 대한 특허 출원을 진행했습니다.

결과: 특허청 심사관은 의견제출통지서를 발송하며 거절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인용된 선행 기술 문헌은 다름 아닌 K사가 박람회 당시 배포했던 브로슈어와 유튜브에 업로드된 현장 인터뷰 영상이었습니다.

2. 경쟁사의 모방 및 선출원주의의 위협

대한민국을 포함한 대다수의 국가는 먼저 발명한 사람이 아닌, 먼저 특허청에 출원한 사람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선출원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 기술 탈취 리스크: 법적 보호막(특허 출원 번호) 없는 기술 공개는 경쟁사에게 R&D 결과물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과 같습니다.
  • 개량 발명 선점: 경쟁사가 귀사의 공개된 기술을 바탕으로 일부 구성을 개량하여 먼저 특허를 출원할 경우, 원천 기술 보유자인 귀사가 오히려 후발 주자의 특허를 침해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Experts Tip:
출원 사실을 증명하는 "Patent Pending" 표시는 기술의 독창성과 법적 보호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하는 강력한 경영 신호입니다.

3. 사후 구제책

만약 부득이하게 특허 출원 전 박람회 참가가 이루어졌다면, 공지예외주장 제도를 통해 구제를 모색해야 합니다.

이는 발명자가 자신의 발명을 공개한 경우, 일정 요건 하에 그 공개가 없었던 것으로 간주하여 신규성을 인정해 주는 제도입니다. 단, 이 제도는 만능열쇠가 아니며 엄격한 요건이 따릅니다.

  1. 기간의 엄수: 공개일로부터 1년 이내(한국 특허법 제30조 기준)에 반드시 출원해야 합니다. (미국 1년, 일본 1년 등 국가별 상이)
  2. 절차적 요건: 출원서에 공지 예외 주장의 취지를 기재하고, 30일 이내에 증명 서류(전시회 참가 증빙, 공개 자료 등)를 제출해야 합니다.

4. 해외 진출 시 치명적인 함정

본 칼럼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해외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공지예외주장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유럽(EPO)과 중국 등 주요 국가는 신규성 요건에 대해 매우 엄격한 잣대를 적용합니다.

유럽/중국의 태도: 원칙적으로 출원 전 공개된 기술은 특허성을 상실한 것으로 봅니다. (극히 제한적인 정부 주관 국제 박람회만 예외 인정)

결론: 한국에서 공지예외주장으로 특허를 등록받았다 하더라도, 동일한 기술로 유럽이나 중국에 진출할 경우 절대적 신규성 상실을 이유로 특허 등록이 불가능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즉, 글로벌 비즈니스를 지향한다면, 박람회 오픈 전 출원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5. 최적의 실행 로드맵

성공적인 박람회와 견고한 특허 포트폴리오 확보를 위해 다음의 3단계 전략을 제언합니다.

  • Phase 1. 선(先) 출원 전략 :
    제품의 사진, 도면, 핵심 매커니즘이 포함된 자료가 외부에 노출되기 전, 가출원제도 등을 활용하여 신속하게 출원일을 확보하십시오. 명세서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기술의 요지를 담아 출원 시점을 선점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 Phase 2. 글로벌 출원 연계 :
    박람회에서 만날 해외 바이어를 고려하여, 국내 출원을 기초로 하는 우선권 주장 출원 또는 PCT 국제 출원 계획을 수립하십시오. 이는 향후 1년간 해외 출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전략적 유보 기간을 제공합니다.
  • Phase 3. 증거 보전 :
    출원 전 공개가 불가피했다면, 공개된 시점, 장소, 구체적인 내용(전시 부스 사진, 배포된 리플릿 PDF, 보도자료 등)을 체계적으로 아카이빙 하십시오. 이는 추후 국내 공지예외주장을 위한 필수적인 소명 자료가 됩니다.

마무리

기술력이 기업의 창이라면, 특허권은 기업의 방패입니다. 박람회라는 전장에서 창만 들고 싸우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전시회 일정으로 시간이 촉박하거나, 기술 공개 범위에 대한 판단이 어려우시다면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십시오. 핵심 기술만을 선별하여 신속하게 권리 범위를 확보하는 전략적 접근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