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특허침해 소송을 당하는가

파인특
February 13, 2026

2025년 5월, 미국의 특허관리법인(NPE) 넷리스트(Netlist)가 삼성전자의 HBM(고대역폭메모리) 제품군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텍사스 동부지방법원(E.D. Texas)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업계는 이를 기술의 IP를 지렛대로 로열티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전형적 소송으로 해석합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피소되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그리고 데이터가 말하듯, 국내 기업의 해외 특허침해 피소는 소수 대기업에 집중되어 있으며, 특히 미국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합니다. 

이제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삼성이 정말 남들보다 더 많이 침해하기 때문인가?

변리사로서, 그리고 기업 의사결정을 이해하는 관점에서 결론부터 말하면, 대부분의 경우 답은 아니다입니다. 피소 건수는 윤리나 기술 수준보다, 훨씬 더 냉정한 경제학과 제도 설계의 결과로 설명됩니다.

1. 오해부터 바로잡자: 피소가 많다 = 침해를 많이 한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특허침해 소송은 본질적으로 권리자가 선택하는공격 행위입니다. 즉, 시장에서의 침해 가능성과는 별개로, 원고가 누구를,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고소하는지가 건수를 좌우합니다. 특히 NPE가 개입하면 이 경향은 더 뚜렷해집니다. NPE는 제품을 팔지 않는 경우가 많아 반소의 위험이 낮고, 따라서 승패보다 합의금의 기대값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타깃을 고릅니다.

이때 피소 1위 기업은 대개 기술 윤리의 결과가 아니라, 시장 구조의 결과로 등장합니다.

2. 삼성 피소의 핵심 공식: 노출(Attack Surface) × 인센티브 × 제도

삼성전자가 세계 최상위 피소 기업이 되는 이유는, 세 가지 요인이 동시에 크기 때문입니다.

(1) 노출이 압도적으로 크다

삼성은 한 기업 안에 반도체(메모리·HBM), 디스플레이(OLED), 모바일, 가전, 네트워크 등 특허 밀도가 높은 산업을 다수 보유합니다. 이 구조는 필연적으로 다음을 낳습니다.

  • 제품 라인업이 넓을수록 분쟁 가능 포인트가 기하급수로 증가
  • 부품·모듈·공정·펌웨어·표준기술까지 겹치며 특허 덤불(thicket)을 통과해야 함
  • 글로벌 공급망과 다수의 미국 현지 법인/판매 채널로 인해 소송의 접점(contact point)이 많아짐

쉽게 말해, 삼성은 한두 발명이 아니라 수천 개의 기술 접합부로 사업을 굴립니다. 소송은 대개 그 접합부에서 발생합니다.

(2) 원고의 인센티브가 가장 크다

소송은 결국 기대수익 – 비용입니다. 삼성은 원고 입장에서 매우 매력적인 피고입니다.

  • 미국 내 판매 규모/점유율이 커서 손해배상·로열티 산정의 상한이 커짐
  • 분쟁이 장기화될수록 삼성의 방어 비용도 커지므로, 원고는 비용 압박을 레버리지로 삼기 쉬움
  • 특히 핵심 부품(예: HBM)은 돈보다 공급망 리스크가 더 무서워, 원고는 사업 중단 가능성을 협상 카드로 끌어올리기 쉽습니다(ITC 위협 포함)

NPE의 시각에서 삼성은 이기기 쉬워서가 아니라, 합의가 성립되기 쉬운(혹은 합의금 기대값이 높은) 피고가 됩니다.

(3) 제도/포럼이 소송을 쉽게 만든다

국내 임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미국은 특허 소송이 장사가 되기 쉬운 제도적 요소를 갖고 있고, 그중 일부 포럼은 특히 그렇습니다.

  • 배심제, 디스커버리, 포럼 선택 전략, 손해배상 산정 구조, 그리고 ITC(수입금지)라는 강력한 옵션
  • 그래서 소송의 상당 부분이 미국에 집중되고, NPE도 그 무대로 몰립니다.

결과적으로, 삼성이 많이 피소된다는 사실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무대의 성격을 반영합니다. 다만 삼성은 그 무대에 가장 크게 노출된 플레이어인 셈입니다.

3. 넷리스트 HBM 소송이 보여주는 전형

넷리스트의 HBM 제소는 위 3요소가 한 장면에 응축된 사례입니다.

  1. HBM은 AI/HPC 붐으로 가장 뜨거운 코어가 되었고
  2. 코어 기술은 특허 밀도가 높아 누군가의 특허에 걸릴 확률이 크며
  3. 소송 포럼이 강한 압박을 줄 수 있는 지역이고
  4. 삼성은 이 시장의 핵심 공급자이니 합의 기대값이 크다

이 구조를 보면, 피소는 우연이 아니라 거의 필연처럼 작동합니다.

4. 피소 건수가 아니라 방어 비용의 기대값을 낮출 수 있는가

대기업에게 특허 분쟁은 이제 법무 이슈가 아니라 경영 리스크(비용·공급망·출시 일정·대외 신뢰)입니다. 따라서 목표는 피소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훨씬 실용적으로 다음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 (A) 소송이 들어와도, 초기에 게임을 끝낼 수 있는가?
  • (B) ITC/공급망 리스크를 사업 의사결정에 내장했는가?
  • (C) NPE의 비대칭(반소 불가)을 상쇄할 수단을 갖고 있는가?

피소는 완전 회피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피소의 비용 구조는 설계할 수 있습니다.

5. 한국 기업 IP팀에 드리는 현실적 처방 5가지

현장에서 바로 KPI로 연결될 수 있는 수준으로 요약합니다.

① 출시·표준·핵심부품은 기술 검토보다 라이선스 캘린더가 먼저다

표준·통신·메모리·디스플레이는 침해 여부만큼 라이선스 만기/갱신이 분쟁을 만든다.
사업부·구매·재무와 함께 만기 캘린더를 경영 시스템으로 올려야 합니다.

② NPE 대응은 법무 이벤트가 아니라 운영 프로세스다

클레임차트 수신 → 초기 기술 반박 → 무효(PTAB/IPR) 트리거 → 포럼 전략(선제 DJ 가능성 포함)까지 플레이북을 표준화해야 합니다.

③ ITC 리스크는 특허팀이 혼자 못 푼다: 공급망·대체설계·비상조달을 붙여라

ITC는 수입금지가 본질입니다. 따라서 대응은 특허팀 단독이 아니라, SCM + 품질 + 생산 + 사업부가 함께 설계해야 합니다.

④ 증거개시(Discovery)가 곧 비용이다: 문서·코드·설계 산출물의 증거 체계를 선제 구축하라

미국 소송 비용은 자료 대응에서 폭발합니다. 결국 이겼다/졌다 이전에 버틸 체력이 승패를 갈라버립니다.

⑤ 집단 방어 옵션을 진지하게 검토하라

NPE는 반소가 약하니, 방어 측은 집단 무효/정보 공유/방어 네트워크로 비대칭을 상쇄해야 합니다. 단독으로 맞서면 캠페인의 다음 타깃이 되기 쉽습니다.

맺음말

삼성전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피소되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삼성은 침해를 더 많이 해서가 아니라, 가장 넓은 기술 전장에, 가장 큰 돈이 걸린 제품을, 미국에서 판매하는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해법은 특허를 더 많이 내자가 아니라, 소송을 더 세게 하자도 아닙니다.

 방어 비용의 기대값을 낮추는 구조를 만들자—즉, IP를 법무가 아니라 경영 시스템으로 끌어올리자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