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디스커버리, 또는 KR 디스커버리의 본질은 미국식 광범위한 pre-trial discovery의 수입이 아니다. 오히려 법원이 통제하는 제한적·목적형 증거수집 장치에 가깝다. 지식재산처도 과거 설명자료에서 “소송 당사자가 증거와 정보를 상호 공개하는 미국식 디스커버리”와 한국형 증거수집제도는 다르며, 한국형 제도는 독일식 전문가 증거조사와 기존 자료제출명령의 강화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고 설명한 바 있다.
변리사에게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KR 디스커버리는 “상대방의 자료를 더 많이 볼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 기업 내부의 기술자료·설계자료·소스코드·공정데이터·거래자료·회의록·이메일·시험성적서가 언제든 소송상 쟁점으로 호출될 수 있다는 경영 리스크의 제도화다.

우선 상태를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현재 특허법에는 이미 구체적 행위의 내용·방식·형태 제시의무가 존재한다. 특허권자 등이 주장하는 침해행위의 구체적 내용·방식·형태를 부인하는 당사자는 자기의 구체적 행위의 내용·방식·형태를 제시해야 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제시하지 않으면 법원은 권리자 측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 또한 특허법 제132조는 침해 증명 또는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의 제출명령, 영업비밀 자료에 대한 열람범위 제한, 제출명령 불응 시 사실인정 제재를 두고 있다. 여기에 고의적 특허침해에 대해서는 인정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액을 정할 수 있는 구조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인하우스가 말하는 “KR 디스커버리”의 핵심 패키지, 즉 전문가 사실조사, 법정 외 진술녹취, 자료보전명령은 특허법상 아직 확정 시행된 제도가 아니라 도입 법안의 영역에 있다. 2025년 11월 6일 발의된 특허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자료보전명령, 법정 외 신문, 전문가 사실조사, 법률자문서의 조사대상 제외, 자료제출명령 및 비밀유지명령 개선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2026년 3월 10일 국회 소위에 상정된 상태로 확인된다.
반면 상생협력법에서는 KR 디스커버리형 제도가 먼저 법제화되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6년 1월 29일 상생협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전문가 사실조사·당사자 신문·자료보전명령의 3대 패키지가 마련되었다고 발표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기준으로 해당 일부개정법률은 2026년 2월 19일 공포, 2028년 2월 20일 시행으로 표시되어 있다. 즉, 특허법 전면 도입은 아직 입법 추적이 필요하지만, 기술탈취·기술자료 유용 분쟁에서는 이미 방향이 정해졌다.
특허침해소송에서 원고가 겪는 가장 큰 난점은 법리보다 사실이다. 특히 B2B 제품, 소프트웨어, 제조방법,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정, 바이오 제조공정처럼 외부에서 침해 구성을 직접 관찰하기 어려운 영역에서는 침해와 손해의 핵심 증거가 피고 내부에 집중된다. 지식재산처는 특허침해소송에서 침해·손해액 증거의 대부분이 침해자에게 편재되어 있고, B2B 제품·소프트웨어·제조방법 특허는 침해자가 자발적으로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입증이 곤란하다고 설명한다.
더 중요한 것은 통계가 이미 기업 현장의 불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지식재산처 자료에 따르면 특허침해소송 경험 기업의 73%가 소송 과정에서 증거확보의 어려움을 겪었고, 96.7%가 증거개시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손해배상제도를 아무리 강화해도, 손해액과 침해사실을 입증할 자료가 법정에 올라오지 않으면 제도는 선언에 그친다. KR 디스커버리는 바로 이 공백을 겨냥한다.
특허법 개정안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전문가 사실조사다. 법관이 지정한 전문가가 일정 요건하에 침해 현장에서 자료를 수집·조사하고, 그 결과가 증거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지식재산처가 설명한 개정안상 요건은 침해 가능성, 조사 필요성, 상대방 부담 정도, 보충성이고, 전문가 후보에는 기술심리관, 전문심리위원, 변호사, 변리사 등이 포함된다. 조사협조의무 위반 시 법인 1억 원, 개인 5천만 원 이하 과태료 및 사실인정 제재가 예정되어 있다.
둘째, 법정 외 진술녹취다. 소송의 쟁점과 증거를 명확히 하기 위해 법원 직원 주재하에 당사자 간 진술을 녹음·녹화하고, 그 결과를 증거로 활용하는 제도다. 제안된 구조상 법원은 당사자 신청에 따라 신문 범위·방법·장소 등을 정할 수 있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 변호사 선임명령도 예정되어 있다.
셋째, 자료보전명령이다. 증거의 멸실·훼손·사용방해를 막기 위해 법원이 침해 증명 또는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를 보전하도록 명하는 제도다. 개정안은 침해소송 또는 가처분이 제기되었거나 소 제기 가능성이 높은 경우, 1년 범위에서 자료보전 기간을 설정하고, 자료훼손 시 사실인정 및 형사제재를 예정한다.
이 세 장치는 모두 “광범위한 문서교환”이 아니라 “법원이 필요성과 범위를 통제하는 사건별 증거수집”이라는 점에서 미국식 디스커버리와 다르다. 그러나 기업 내부에 미치는 긴장감은 결코 작지 않다.
KR 디스커버리 시대의 변리사는 단순히 외부대리인에게 특허명세서, 의견제출통지, 등록공보, 선행기술을 넘겨주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 변리사는 다음 네 가지 질문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첫째, 우리 권리는 증거수집 친화적으로 설계되어 있는가.
제조방법·서버 내부처리·AI 모델·반도체 공정처럼 외부 관찰이 어려운 발명은 권리화 단계부터 “장래 소송에서 어떤 자료가 침해 입증의 핵심이 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청구항은 넓어야 하지만, 동시에 침해 입증의 연결고리가 있어야 한다. 제품 외관, 로그, 시험성적서, 규격문서, 인증자료, 납품사양서, 사용자 매뉴얼, API 문서, 공정 산출물 등으로 어느 정도 추적 가능한 포인트를 남기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중요해진다.
둘째, 공격 사건에서는 ‘침해 주장’보다 ‘조사 필요성’이 먼저다.
전문가 사실조사를 신청하려면 단순한 의심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정안이 전제하는 침해 가능성, 조사 필요성, 상대방 부담, 보충성을 통과해야 한다. 따라서 인하우스는 소송 전 단계에서 claim chart뿐 아니라 “왜 이 자료가 상대방 내부에 있을 수밖에 없는지”, “왜 다른 방법으로는 입증이 어려운지”, “조사 범위를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는지”를 문서화해야 한다. 앞으로 좋은 침해분석 의견서는 청구항 대응표를 넘어, 증거수집 로드맵까지 포함해야 한다.
셋째, 방어 사건에서는 ‘자료 제출’보다 ‘자료 지도’가 먼저다.
피소 기업 입장에서는 어떤 자료가 어디에 있고, 누가 접근하며, 어떤 보존기간을 갖고, 영업비밀·개인정보·제3자 비밀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사전에 파악해야 한다. R&D 서버, PLM, ERP, MES, Git, Jira, 이메일, 메신저, 시험장비 로그, 품질문서, 협력사 포털이 모두 잠재적 증거저장소가 된다. 자료보전명령이 내려진 뒤에야 IT·보안·R&D를 소집하면 늦다.
넷째, 변리사는 영업비밀 방어의 기술언어를 제공해야 한다.
개정 논의에는 법률자문서 제외, 전문가 제척·기피, 조사결정 이의신청, 영업비밀 포함 문서의 열람자 제한 및 비밀유지명령 등 산업계 우려를 반영한 장치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사건에서 “무엇이 영업비밀인지”, “그 중 어느 부분이 침해 판단에 필요한지”, “어떤 형태로 마스킹·요약·대체제출이 가능한지”는 기술을 이해하는 변리사의 설명 없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변리사 관점에서 KR 디스커버리 대응은 소송 발생 후 프로젝트가 아니라 상시 컴플라이언스다.
KR 디스커버리는 특허권자에게 분명히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특히 제조방법, 소프트웨어, 공정발명, B2B 부품처럼 침해 증거가 피고 내부에 있는 사건에서 실질적 권리구제 가능성을 높인다. 지식재산처는 제도 도입의 기대효과로 손해배상액 현실화, 소송기간 단축, 특허권자 승소율 증가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피고 기업의 부담도 현실적이다. 전문가 사실조사 범위가 넓어지면 영업비밀 유출 우려, 조사 대응 비용, 포렌식 비용, 임직원 진술 리스크가 커진다. 법률신문도 제도 본격화 시 외국 기업이나 특허괴물 등이 한국 기업을 상대로 소송전을 벌일 수 있다는 전망과, 컴플라이언스·증거관리 체계 전면 재검토 필요성을 보도한 바 있다.
따라서 변리사는 제도를 “권리자 친화적 개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자사 사업부 전체의 증거관리 체질을 바꾸는 계기로 보아야 한다. 특허권을 행사하는 회사도 언젠가는 피고가 된다. 공격 전략과 방어 전략은 같은 거버넌스 위에 서 있다.
KR 디스커버리는 한국 특허소송의 문법을 바꿀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는 침해를 의심해도 내부자료에 접근하지 못해 포기한 사건이 많았다. 앞으로는 법원이 필요성과 범위를 인정하면, 전문가가 현장에 접근하고, 자료가 보전되며, 당사자 진술이 녹취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준비된 기업에게만 기회다. 권리자는 조사 필요성을 설득할 증거의 뼈대를 준비해야 하고, 피고는 조사 범위를 통제할 자료지도와 영업비밀 방어논리를 준비해야 한다.
파인특허법률사무소의 관점에서, KR 디스커버리 시대의 핵심 역량은 “소송이 났을 때 대응하는 능력”이 아니다. 핵심은 소송이 나기 전부터 기술, 특허, 기록, 영업비밀, 협력사 자료, 법률자문을 하나의 증거 거버넌스로 설계하는 능력이다. 앞으로의 특허분쟁은 좋은 청구항과 좋은 증거관리 체계를 함께 가진 기업이 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