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산업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과 융합하며 기존의 사후 치료 방식에서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측이 가능한 예방·건강관리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습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 등의 기술 발달에 맞추어 ICT 융합기술 및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 기술이 활발히 개발되고 있으며, 이는 진단 정확도 향상, 의료 서비스 효율 증대 등 혁신을 주도하며 시장의 급격한 성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발전은 필연적으로 특허 경쟁 심화와 분쟁 가능성 증가라는 양면성을 지닙니다.
AI 의료기기 분야의 특허 출원은 2013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특히 인공지능 기술의 보편화와 의료 및 헬스케어 산업 내 스타트업들의 기술 개발이 맞물린 2018년도에는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가장 높은 출원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과 한국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기술 분야별로는 영상 진단, 생체 계측 등 진단 및 진찰 분야의 출원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나며, 수술 및 치료 분야 또한 활발한 특허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주요 출원인으로는 필립스(Koninklijke Philips N.V.), 지멘스(Siemens AG)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국내의 경우 대학 산학협력단을 통한 출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그러나 의료기기 분야는 제품 개발 및 인허가 절차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특성상, 상대적으로 특허 분쟁에 대한 경각심과 체계적인 대응 전략 수립이 미흡한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전체 의료기기 특허 분쟁 건수는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지만, 인공지능이 적용되거나 소프트웨어 처리, 의료 영상처리 등 첨단 기술 분야의 특허 분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어 AI 의료기기 관련 기업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1. 분쟁 예방
분쟁은 예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응책입니다. 기업은 제품 개발의 각 단계별로 다음과 같은 선제적인 IP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아이디어 창출 단계 (특허 동향 조사): 개발하려는 아이디어가 이미 공개된 기술인지, 타인이 실시하는 제품과 유사한지, 관련 지식재산권이 존재하는지를 선제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허 동향 조사는 특정 기술 분야의 특허를 정량적으로 분석하고(연도별/국가별 출원 수, 주요 출원인 활동 현황, 시장 성장 단계 파악 등), 선정된 핵심 특허의 기술성 및 권리범위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정성분석을 포함합니다. 이를 통해 제품 개발 방향을 설정하고, 시장 진입 전략을 수립하며, 경쟁사의 기술을 검토하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제품 확정 단계 (특허 침해 분석, FTO): 의료기기는 인체에 사용되므로 미국 FDA, 국내 식약처 등의 엄격한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며, 이 과정에서 제품 사양이 상세하게 확정됩니다. 이 단계에서 특허 침해 검토 없이 제품 사양을 결정한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인허가 이후에도 특허 문제로 제품 판매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확정된 제품 사양을 바탕으로 특허 침해 분석(Freedom-To-Operate, FTO)을 수행하여 자사 제품이 타인의 특허를 침해할 가능성을 검토해야 합니다. 클레임 차트(Claim Chart)를 활용하여 특허 청구항의 각 구성요소와 자사 제품을 비교하고, 문언적 침해뿐만 아니라 균등론에 의한 침해 가능성까지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청구항의 용어가 불분명할 경우 명세서의 상세한 설명, 도면, 심사 이력 등을 참고하여 권리 범위를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제품 홍보 및 판매 단계 (전시회 참가 및 계약 시 유의사항): 해외 전시회에서 제품을 홍보하는 행위는 판매의 청약에 해당되어 특허권 침해로 간주될 수 있으며, 특허권자로부터 조기 침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당해 전시 제품 압류 등의 조치를 당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분쟁 위험을 파악하고, 현지 대리인의 비침해 의견서를 확보하며, 경고장 수령 시 즉각적으로 법률 자문을 구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합니다. 또한, 물품 공급 계약 체결 시 특허보증(Patent Warranty) 또는 면책(Indemnity) 조항을 신중히 검토해야 합니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보증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하고, 구매자 입장에서는 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계약 내용을 조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강한 특허 포트폴리오 수립: 단순히 개별 기술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R&D 초기부터 시장성, 기술성, 특허 동향, 침해 분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핵심 기술, 응용 기술, 그리고 부가 기술까지 아우르는 전략적인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는 기술 및 시장 진입 장벽을 형성하고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연구 개발 이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특허 출원과 연계하며, 발명설명서 작성 시 다양한 실시예를 포함하여 넓은 권리범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미국 가출원(Provisional Application) 제도를 활용하여 신속하게 출원일을 확보하고, 국내외 상황에 맞춰 분할출원(Divisional Application), 계속출원(Continuation Application), 부분계속출원(Continuation-in-Part Application) 등을 통해 특허망을 강화하며, 필요시 우선심사 제도를 활용하여 신속한 권리 확보를 도모해야 합니다. 자사 특허 포트폴리오를 주기적으로 분석하고 시각화하여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2. 분쟁 대응
선제적인 예방 노력에도 불구하고 특허 분쟁이 발생했다면, 신속하고 현명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경고장 수신 및 대응: 경고장은 특허 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으며, 무시할 경우 법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예: 손해배상액 산정 기산일, 간접침해의 고의 요건 성립). 경고장 수신 즉시 법률 전문가와 상담하여 발신자의 의도(경쟁사의 시장 견제, NPE의 라이선스 요구 등)를 파악하고, 경고장에 명시된 특허의 권리 사항(특허권자, 유효기간, 연차료 납부 여부, 패밀리 특허, IDS 제출 여부 등 - USPTO Patent Center 등에서 확인 가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자사 제품의 침해 가능성 분석 시, AI 의료기기 특허는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기술과 마찬가지로 특허 적격성(미국 특허법 101조)이 문제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 부분을 집중 검토해야 합니다. 또한, 청구된 발명이 의료기술자의 행위를 포함하는지, 아니면 순수하게 기기의 동작인지, 각 구성요소의 실행 주체가 단일 기기인지 복수 기기인지, 인공지능 모델이 학습 단계의 기술인지 추론 단계의 기술인지를 명확히 구분하여 분석해야 합니다. 침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해당 특허의 무효 가능성을 검토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무효 사유(발명의 성립성, 산업상 이용가능성, 기재불비, 신규성, 진보성 등) 외에도, AI 의료기기 특허는 선행 기술로서 학술 논문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구글 스콜라 등 논문 데이터베이스 검색도 필수적입니다. 침해 및 무효 가능성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비침해 논리 구성, 무효심판 청구, 회피 설계, 라이선스 또는 크로스라이선스 협상 등 다각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명시된 기한 내에 회신해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향후 소송에 대비하여 관련 자료의 수정, 훼손, 폐기를 금지하는 소송 증거 보존(Litigation Hold) 조치를 즉시 시행해야 합니다.
특허 침해 소송 대응: 특허 침해 소송은 복잡하고 장기간이 소요되므로, 전문성을 갖춘 소송 대리인 선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인공지능 의료기기 분야는 기술적 난이도가 높고 인허가 등 규제 사항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대리인 선정이 필수적입니다. 미국 특허 침해 소송은 특허사건관리규정(Patent Local Rules, PLR)에 따라 진행되며, 관할권(Jurisdiction) 및 재판지(Venue) 선택이 소송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TC Heartland 판결 이후 델라웨어 지방법원에서의 소송이 증가한 현상 참조). 배심원 재판(Jury Trial) 신청 여부, 전문가 증언(Expert Testimony) 활용 등도 중요한 전략적 고려 사항입니다. 소송 절차는 원고의 소장(Complaint) 제출로 시작되며, 피고는 답변서(Answer)를 통해 원고의 주장을 인정 또는 부인하거나, 적극적 항변(Affirmative Defense - 예: 특허 무효, 비침해, 선사용권 등) 또는 반소(Counterclaim)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후 증거개시절차(Discovery), 청구범위 해석을 위한 마크맨 히어링(Markman Hearing), 약식 판결(Summary Judgment) 또는 정식 재판(Trial) 순으로 진행되며, 1심 판결에 불복 시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에 항소할 수 있습니다.
특허 무효 심판 (IPR, PGR 등) 활용: 특허 침해 주장에 대응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는 해당 특허를 무효화시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당사자계 무효심판(Inter Partes Review, IPR), 등록 후 무효심판(Post-Grant Review, PGR) 등의 제도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IPR은 특허 등록일로부터 9개월이 경과한 후 또는 PGR 종료 후 선행문헌(특허, 간행물)에 근거하여 신규성 또는 진보성 결여를 이유로 무효를 다툴 수 있으며, 비교적 신속(심리 개시 결정 후 1년 이내 최종 결정)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진행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침해 소송 중 IPR을 제기하고 법원에 소송 중지(Motion to stay pending IPR)를 신청하여 소송 진행을 멈추고 IPR 결과를 기다리는 전략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PGR은 특허 등록일로부터 9개월 이내에 신청 가능하며, 신규성, 진보성뿐만 아니라 특허 적격성(101조), 기재불비(112조) 등 보다 넓은 범위의 무효 사유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3. 적극적인 특허 자산 활용
방어적 관점뿐만 아니라, 자사가 보유한 강력한 특허 포트폴리오는 경쟁 환경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공격의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 제품 및 자사 특허 분석: 경쟁사의 제품이 자사 특허를 침해하는 것으로 의심될 경우, 해당 제품의 상세 정보(카탈로그, 웹사이트, 실제품 분석 등)를 수집하고, 자사 보유 특허와의 클레임 차트 분석을 통해 침해 여부를 정밀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특히 소프트웨어나 알고리즘 관련 특허의 경우, 침해 입증을 위해 소스코드 확보가 필요할 수 있으며, 이는 증거개시절차를 통해 진행될 수 있습니다.
권리 행사 진행 여부 결정: 자사 특허의 유효성을 재검토하고, 상대방이 보유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분석하여 역공 가능성을 평가하며, 권리 행사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소요되는 비용, 기간, 인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하게 권리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특허권 행사 방법: 경고장 발송을 통해 상대방에게 침해 사실을 알리고 라이선스 협상 등을 유도하거나, 직접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침해 소송 시에는 승소 가능성, 사건 처리 신속성 등을 고려하여 유리한 재판지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 소송의 경우, 손해배상액 산정 방법(특허권자가 입은 판매 및 이익의 손실액, 합리적 로열티 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손해액 주장을 준비해야 합니다.
결론
AI 의료기기 시장은 기술 발전과 함께 치열한 특허 경쟁이 펼쳐지는 분야입니다. 기술 개발 초기 단계부터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IP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분쟁 발생 시에는 전문적인 법률 지원을 통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기업만이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인 성장과 성공을 담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공지능 의료기기 분야의 특허 동향과 분쟁 환경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